사람들이 그 돈을 받아줄 것이라는 믿음이다.
만 원짜리 지폐로 물건을 살 수 있는 이유도 종이가 귀해서가 아니라,
다음 사람 역시 그 지폐를 받아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달러도 마찬가지다.
미국 안에서만 사용되는 돈이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힘을 갖기 어려웠다.
세계 여러 나라가 무역하고, 빚을 내고, 자산을 보관할 때
달러를 선택했기 때문에 달러는 세계의 중심 통화가 되었다.
페트로달러 체제는 이러한 달러 수요를 석유와 연결한 구조다.
쉽게 말해 세계가 석유를 사기 위해 달러를 필요로 하고,
산유국이 벌어들인 달러가 다시 미국 금융시장으로 돌아가는 흐름을 뜻한다.
금과 헤어진 달러는 무엇으로 신뢰를 얻었을까
1971년 이전 달러 뒤에는 금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만들어진 브레턴우즈 체제에서
달러는 금과 교환할 수 있는 통화였다.
달러는 금과 교환할 수 있는 통화였다.
미국은 금 1온스의 가격을 35달러로 정했고,
다른 나라들은 자국 통화의 가치를 달러에 연결했다.
당시 달러를 가진다는 것은 간접적으로 금을 보유한다는 뜻에 가까웠다.
달러의 신뢰를 미국 정부의 약속과 금이라는 실물이 함께 받쳐준 것이다.
하지만 세계 경제가 성장하면서 해외에 풀린 달러가
미국이 보유한 금보다 많아졌다.
결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71년 8월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는 제도를 중단했다.
금 대신 달러 수요를 유지할 장치가 필요했다
금과의 연결이 끊어진 뒤 달러는 새로운 질문을 받게 되었다.
“미국이 달러를 계속 발행한다면 다른 나라가 왜 그 돈을 보유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다.
통화의 가치는 공급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공급이 늘어도 그만큼 많은 사람이 필요로 하면 가치는 유지될 수 있다.
미국에는 전 세계가 반복해서 달러를 구하도록 만드는 강력한 수요처가 필요했다.
그 역할을 맡게 된 상품이 바로 석유였다.
석유는 자동차 연료만이 아니라
공장, 운송, 전기, 화학제품 생산에 필요한
세계 경제의 핵심 에너지였기 때문이다.
페트로달러 체제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1973년 오일 쇼크가 국제경제의 흐름을 바꿨다
1973년 이집트와 시리아를 중심으로 한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제4차 중동전쟁이 일어났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하자 아랍 산유국들은
미국을 포함한 일부 국가를 상대로 석유 수출을 제한했다.
공급이 줄자 국제 유가는 짧은 기간에 크게 올랐다.
석유를 수입하던 나라들은 연료비와 운송비 상승을 겪었고,
물가도 함께 뛰었다. 이것이 제1차 오일 쇼크다.
오일 쇼크는 산유국의 영향력을 크게 키웠다.
동시에 석유를 어떤 통화로 사고팔 것인지가
세계 금융질서를 좌우할 수 있다는 사실도 보여주었다.
미국과 사우디의 협력이 달러 순환을 강화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경제·안보 협력을 확대했다.
1974년 6월에는 미국과 사우디의 경제협력위원회 설립이 공식 발표되었다.
구조는 비교적 단순했다.
국제 석유거래에서 달러 사용이 널리 자리 잡으면
석유 수입국은 먼저 달러를 구해야 한다.
산유국은 석유를 팔고 받은 달러로 미국의 국채와
금융자산을 사거나 미국의 기술·무기·서비스를 구매한다.
이렇게 산유국으로 흘러간 달러가
다시 미국 금융시장으로 돌아오는 현상을 페트로달러 재활용이라고 한다.
미국 정부의 외교 문서에도 사우디 자금의 미국 국채 투자와
금융기관을 통한 잉여자금 재순환이 확인된다.
다만 페트로달러를
“모든 산유국이 반드시 달러만 사용하도록 만든 하나의 비밀 협정”
으로 이해하면 지나치게 단순하다.
실제로는 달러 중심의 석유 가격 표시,
미국과 산유국의 안보 협력, 산유국 자금의 미국 금융시장 투자 등이
결합해 형성된 국제경제 구조에 가깝다.
페트로달러가 미국에 준 가장 큰 힘은 무엇일까
미국은 자국 통화로 해외 물건을 살 수 있다
보통 국가는 해외 물건을 수입하려면
먼저 수출이나 투자 유치를 통해 외화를 벌어야 한다.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 원유를 사려면 원화를 그대로 내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달러를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자신이 발행하는 달러로 원유와 상품을 살 수 있다.
세계가 달러를 필요로 하는 한 미국은 다른 나라보다 훨씬 낮은 부담으로
해외 자원을 구매하고 빚을 조달할 수 있다.
이를 흔히 기축통화국이 누리는 특권이라고 한다.
우리말로 비유하면 달러가 완전히 마르지 않는 ‘화수분’과 비슷해진 셈이다.
그렇다고 달러를 무한정 찍어도 되는 것은 아니다
페트로달러 체제가 미국에 큰 이점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달러의 가치가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달러를 지나치게 발행하면 미국에서도 물가가 오르고
금리가 상승하며 통화에 대한 신뢰가 약해질 수 있다.
미국이 달러를 발행할 수 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계가 그 달러를 안전한 자산으로 받아들이는가이다.
기축통화의 진짜 힘은 인쇄기가 아니라
신뢰, 금융시장, 군사력, 법제도, 무역 네트워크에서 나온다.
달러 기축통화 체제는 앞으로 무너질까
달러의 비중은 줄지만 중심 지위는 유지되고 있다
탈달러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말은 일부 사실이다.
IMF에 따르면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5년 4분기 기준 56.77%로 과거보다 낮아졌다.
그러나 유로화는 20.25%, 중국 위안화는 1.95%로 달러와 여전히 큰 차이가 있다.
달러가 강한 이유는 석유 하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미국 국채시장은 규모가 크고 거래가 쉬우며,
달러는 무역 결제와 국제대출, 외환거래에서 폭넓게 사용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분석에서도 달러는 세계 외환보유액과
국제결제, 금융거래에서 여전히 가장 영향력 있는 통화로 나타난다.
미래는 달러 붕괴보다 통화 다극화에 가깝다
앞으로 일부 국가는 위안화, 유로화, 금, 지역 통화를 더 많이 사용할 수 있다.
미국의 제재에 대한 부담, 국가부채 증가, 지정학적 갈등도
달러 의존도를 낮추려는 움직임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기축통화가 되려면 통화 가치만 안정적이어서는 부족하다.
누구나 사고팔 수 있는 거대한 채권시장, 자유로운 자금 이동,
투명한 제도, 위기 때도 믿을 수 있는 금융시장이 필요하다.
따라서 달러 체제의 방향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모습보다
달러의 중심 지위는 유지되면서
다른 통화와 금의 역할이 조금씩 커지는 방향에 가깝다.
페트로달러의 영향력은 예전보다 약해질 수 있지만
달러를 중심으로 쌓인 금융 네트워크까지 빠르게 사라지기는 어렵다.
돈의 본질은 결국 믿음이다. 금이 달러를 지켜주던 시대가
끝난 뒤에는 석유와 미국 금융시장이 그 믿음을 보강했다.
앞으로 달러의 운명을 결정할 것도 특정 상품 하나가 아니라
미국 경제와 제도에 대한 세계의 신뢰일 것이다.
자주 묻는 질문
질문 1
Q. 페트로달러는 석유를 달러로만 결제한다는 뜻인가요?
A. 페트로달러는 석유거래에 사용되는 달러와 산유국으로 들어간 달러가 다시 국제 금융시장에 투자되는 구조를 뜻합니다. 모든 석유거래가 법적으로 달러만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질문 2
Q. 석유를 위안화로 결제하면 달러 기축통화가 무너지나요?
A. 일부 석유거래가 위안화나 다른 통화로 이뤄진다고 해서 달러 체제가 곧바로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외환보유액, 국제대출, 채권시장, 무역결제 등 여러 영역에서 달러 사용이 함께 줄어야 큰 변화가 나타납니다.
질문 3
Q. 달러 기축통화 체제는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A. 한국은 원유와 원자재를 많이 수입하기 때문에 달러 가치가 오르면 수입 비용과 국내 물가가 상승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달러로 수익을 얻는 수출기업에는 환율 상승이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어 산업별 영향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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