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1860년대 문 앞에 선 서구 열강, 조선과 일본의 첫 이정표


19세기 중반, 동아시아의 바다는 이른바 '이양선'이라 불리는 거대한 서양 증기선들의 등장으로 술렁였습니다. 1860년대는 조선과 일본 모두에게 "이방인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라는 거대한 숙제가 떨어진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 두 나라가 내린 첫 번째 판단은 향후 100년의 운명을 완전히 갈라놓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처음 공부할 때는 두 나라가 단순히 '폐쇄'와 '개방'이라는 이분법으로 움직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 내면에는 훨씬 더 복잡한 권력 구조와 세상에 대한 인식 차이가 있었습니다.

1. 조선의 1860년대: 척화비와 위기감의 발현

당시 조선은 흥선대원군이 집권하고 있었습니다. 대원군의 대외 정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통상 수교 거부 정책'입니다. 흔히 쇄국정책으로 잘 알려져 있죠. 대원군이 문을 닫아걸었던 것은 단순히 고집이 세서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조선 지배층이 바라본 세계 정세는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당시 아시아의 맹주였던 청나라가 영국과의 아편전쟁에서 처참하게 패하고, 수도 북경까지 함락당했다는 소식은 조선 조정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세계의 중심인 청나라도 저 모양이 되었는데, 우리가 서양과 교류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여기에 1866년 병인양요(프랑스 침공)와 신미양요(미국 침공)를 거치면서 조선은 나름대로 서구 열강의 공격을 '막아냈다'는 승리감에 도취하게 됩니다.

이 성공 경험이 오히려 독이 되었습니다. 조선은 서양의 무기가 가진 파괴력을 과소평가했고, "우리의 전통 체제와 정신력으로 서양을 물리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집니다. 전국에 세워진 척화비는 이러한 자신감의 표현이자, 변화하는 세계 흐름에 눈을 감아버린 경직성의 상징이었습니다.

2. 일본의 1860년대: 막부의 몰락과 양이(攘夷)의 한계 체감

비슷한 시기, 일본은 우리보다 조금 일찍 서양의 힘을 맛보았습니다.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이끄는 흑선(쿠로후네)이 나타나 무력시위를 벌이자, 당시 일본을 지배하던 에도 막부는 싸워보지도 못하고 문을 열었습니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일본 내부에서도 처음에는 조선 못지않게 "서양 오랑캐를 쫓아내자"는 '양이(攘夷)'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사쓰마 번이나 조슈 번 같은 지방의 강력한 세력들은 독자적으로 영국, 프랑스 군함과 포격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조선과 달랐던 점은 '패배 이후의 피드백'이었습니다. 사쓰마와 조슈는 서양 군함의 압도적인 화력을 정면으로 얻어맞은 뒤, 곧바로 생각을 바꿨습니다. "지금의 칼과 창으로는 저들을 이길 수 없다. 일단 저들의 기술을 배우고 힘을 기른 뒤에 대항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이들은 서양 오랑캐를 배척하자던 주장을 버리고, 오히려 서양의 무기를 수입해 자신들을 굴복시켰던 에도 막부를 무너뜨리는 권력 투쟁(메이지 유신, 1868년)으로 방향을 선회합니다.

3. 결정적 인식 차이가 가져온 첫 번째 결과

1860년대 말, 조선과 일본의 풍경은 완전히 대조적이었습니다. 조선은 이양선을 격퇴했다는 승리감 속에서 유교적 가치관과 척화비를 더욱 공고히 다졌습니다. 반면 일본은 수백 년간 이어져 온 막부 체제를 무너뜨리고 천황을 중심으로 한 근대 국가(메이지 정부)를 수립하며 대대적인 체질 개선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은 체제의 '안정'과 '전통 유지'를 최우선으로 삼았고, 일본은 살아남기 위한 '변혁'과 '모방'을 선택한 것입니다. 조선의 선택은 내부 결속을 다지는 데는 일시적으로 성공했을지 몰라도, 국제 사회의 냉혹한 변화 속도를 따라잡을 기회를 놓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반면 일본은 대혼란을 겪으면서도 서구식 근대화라는 열차에 탑승할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이 1860년대의 첫 단추가 향후 두 나라의 운명을 어떻게 뒤흔들게 되는지, 다음 시간에 본격적으로 다루어 보겠습니다.

📌 1편 핵심 요약

  • 조선의 상황: 청나라의 패배를 보며 서양에 대한 공포와 적대감을 가졌고, 양요(병인·신미)의 승리 기회로 통상 수교 거부(쇄국) 정책을 고수함.

  • 일본의 상황: 서양의 압도적인 무력을 직접 경험한 후, 감정적 배척을 버리고 현실적인 근대화 기술 수용 및 메이지 유신(1868)으로 체제 전환을 이뤄냄.

  • 인식의 차이: 조선은 전통 수호를 위해 문을 닫았고, 일본은 생존을 위해 서구 문명을 배우기로 결단함.

횡보의 예고 (2편)

다음 2편에서는 1870년대로 넘어갑니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 이후 어떻게 본격적인 근대 국가로 탈바꿈하는지, 그리고 그 영향으로 조선이 결국 최초의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을 맺게 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짚어보겠습니다.

💬 구한말 당시 조선과 일본의 선택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만약 대원군이 다른 선택을 했다면 역사는 바뀌었을까요? 자유로운 의견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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